화엄사 쌍계사와 더불어 지리산 3대 사찰 중의 하나인 천은사는 사성암에서 20분 거리에 위치하며 화엄사와는 바로 지척이다. 하지만 자주 왔던 화엄사와는 달리 천은사와는 그다지 연이 없었다. 하지만 몇 년 전 처음 접한 천은사의 아름다움 때문인지 지리산을 올 때면 꼭 찾게 되는 절이 되었다. 오늘은 미스터 선샤인으로 더 알려진 천은사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지리산이 다른 말로 방대산 삼신산 두류산으로 불리는 건 다 알 것이다. 산문엔 방대산 천은사로 일주문엔 지리산 천은사로 적힌 이유다. 예전 노고단 가는 길에 입장료를 내야 해서 황당했던 기억이 있다. 절을 자주 찾는 이의 입장에서도 이건 아니다 싶었다. 입장료가 없어 진건 정말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반가운 마음으로 천은사 산문을 지난다.

천은사 주차장은 다른 절에 비해 큰 편이다. 올 때마다 주차로 힘들었던 기억은 없다.

천은사의 옛 이름이 감로사(맑고 찬 샛물이 흐르는 절)여서 인지 감로수라 적힌 물이 눈길을 끈다.


천은사 일주문은 두 개의 기둥 위에 지붕을 얹은 독특한 형태로 조선 4대 명필가인 이광사의 서체라 한다.

누림길 보듬길 나눔길의 시작점이다. 천은제(호수)를 중심으로 앞쪽이 누림길 호수 건너편이 보듬길 그리고 천은사 둘레길을 나눔길이라 한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오른편에 서 있다.

상생의 길 데크에서 잘 닦여진 길을 걸어오면 된다.

다리 밑에 잘 보이진 않지만 용모양 작은 상이 있다. 천은제에서 올라오는 모습인데 무슨 뜻을 품고 있는 게 아닐까?



도량을 지키는 사천왕께 감사의 삼배를 올리며 들어선다.

천왕문을 올라서면 바로 보이는 장면이다. 운고루는 예전과 달라진 게 보인다.

보제루와 마주 보고 있다. 천왕문을 중심으로 양쪽에 큰 나무 두 그루가 서 있다.

법요식 때 대중 연회장이나 법회 장소로 쓰이는 곳.
조선후기의 건축물이라 그런지 멋스럽다.

추사 김정희 글씨체 그대로 적혀있다. 계산무진( 계곡과 산은 다함이 없다. 계곡이 있는 산은 영원하다)의 숨은 뜻을 잘 생각해 보자.

조선시대 불교 목조 건물의 형태를 보여주는 전각으로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본존불을 아미타불로 현 세상을 극락정토로 바꾸려는 소망을 담은 게 아닌가 싶다.


극락전에서 왼편으로 올라서면 보이는 포대화상.

극락보전에 깃들어 있던 멧돼지가 변하여 된 복 돼지 바위를 자리 삼아 앉은 포대화상. 파안대소의 그 웃음처럼 모든 이들의 얼굴에도 웃음이 피어나길~~. 한 가지 소원은 이루어진다고 적혀 있다.


두 전각모두 목조 여래 좌상을 본존불로 모시고 있다.

천 개의 눈과 천 개의 손으로 중생들의 고통과 서원을 보살피신다는 천수 천안 관세음보살을 본존불로 하고 있다.

지장보살님을 본존불로 모셨으며 조선후기로 추정된다. 극락보전의 뒤편에 있다.

천은사 경내에서 제일 왼쪽 높은 곳에 있다.



삼성전 전각에 각각의 현판을 다 두었다. 각각의 신령님들께 예를 다해 삼배 올리며 다시 극락보전으로 내려선다.


대청마루 형태로 불자님의 휴식 공간으로도 활용되었으나 지금은 눕지 말란 안내문이 붙어 있다. 정도를 넘어서는 분들 때문에 자꾸 제약이 생기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은행나무 뒤쪽으로 걸어오면 보이는 문. 수행 공간인 것 같아 조용히 지나쳐 나온다. 여기서 오른편으로 틀면 천은사 둘레길의 시작이다. 천은사를 지키는 소나무부터 차밭과 조그만 암자도 나온다.





천은사 둘레길인 나눔길을 다 걸어 내려오면 천은제가 한눈에 들어온다.

쭉 뻗은 대나무를 울타리 삼아 천은 저수지 보까지 걸어가면 맞은편 보듬길이 시작된다. 이번에도 호수 둘레는 돌아보질 못했다. 멀리서 오는 관계로 시간에 쫓겨 다 볼 수 없어 안타깝다. 만약 3도 4촌을 실행할 수 있다면 난 지리산에 자리를 잡고 싶다. 나에게 지리산은 욕심스러운 마음을 정화시키고 자연의 장엄함을 배우며 순리대로 사는 법을 가르치는 그런 산이다. 천은사의 가을은 또다시 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