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주사는 정조대왕이 아버지 사도세자를 모신 융릉(현륭원)을 화산에 조성(1789)한 뒤 1주년 무렵 사도세자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기 위해 창건된 조선 후기 왕실의 유일한 원찰이며 정조가 친히 내린 사찰 이름이라 한다. 10년 뒤 정조대왕이 돌아가시며 융릉 권역 내에 건릉(정조대왕릉)이 조성되고 그 뒤 수원 화성의 축성과 더불어 수원의 역사적 위상과 역사의 정체성이 비롯된 곳이 이곳 융건릉과 용주사인 것이다. 정조대왕의 효심으로 창건된 유서 깊은 사찰 수원 화산의 용주사를 살펴보자.








용주사에서는 사도세자와 혜경궁홍씨 정조대왕과 효의왕후의 위패를 모시고 일 년에 6번 제를 지냈다고 한다. 하지만 1907년 일제 탄압으로 중단되었다가 2008년 100년 만에 사도세자의 제향을 모시며 홍살문을 복원, 호성전의 현판을 걸었다고 한다. 효찰대본산 용주사의 모습을 회복하고 정조대왕과 우리나라의 효문화를 알리고자 하는 뜻이라고 한다.

2005년 정호스님이 개관한 효행 박물관은 용주사의 성보 유물을 보관, 전시하기 위한 곳으로 18세기 왕실 관련 유물과 임금의 하사품등 효 관련 문화재를 전시하고 보관하는 곳이다.

삼문 주련에는 정조대왕이 용주사 낙성식 전날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꿈을 꾸었다는 뜻에서 유래한 용주사 절이름의 배경을 담고있다.


천보루는 일반적인 사찰의 전각보다는 궁궐 또는 대갓집의 건축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안에서 보는 현판은 홍제루라 되어있다. 밖으로는 하늘이 보호하는 곳이며 안으로는 백성을 보호하여 불심을 깨닫게 하는 곳이란 뜻이라 한다.

용주사의 원절인 갈양사의 성정스님이 부처님의 사리 2 과를 사리병에 담아 모셨다고 전해지며 전체적인 조각양식과 수법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용주사의 주불 전인 대웅보전은 여러 차례중수를 거쳤지만 외부단청을 제외하고는 초창기 때의 모습을 보전하고 있어 18세기 불전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석가모니불을 본존불로 약사여래불과 아미타불을 협시불로 봉안하였으며 목조형태이다. 삼세불 후불탱화도 창건당시의 거대한 불화모습 그대로이며 불보살들에 음영을 나타낸 것이 특징이라 한다.



신라종 양식을 보이는 고려초기 대형 범종으로 표면에는 하늘을 나는 비천상, 삼존상, 당좌등이 있으며 아래쪽에 덩굴무늬로 띠를 두른 독특한 형태라고 한다.

천분의 부처님을 모신 전각으로 누구나 수행을 잘하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법화경의 사상이 담겨 있다고 한다.



시방은 불교에서 상•하• 동 •서 •남 •북 •동북•동남• 서북 •서남 등 열 방향으로 나눈 것을 의미하며 칠등은 북두칠성을 의미한다고 하니 다른 사찰의 칠성각을 뜻한다.




사도세자와 혜경궁, 정조대왕과 효의왕후의 위패가 모셔진 전각이다. 전각외부 벽화에는 부모님의 10대 은혜가 그려져 있다.


전강 영신스님은 만공선사의 법맥을 이어 한국불조의 혜명을 밝히신 큰스님으로 평가되시는 분이다.





부모의 은혜가 크고 깊음을 알리는 불교 경전 중의 하나이다.
용주사는 역사가 오래되진 않았지만 효의 근본에서 시작된 절이 만큼 곳곳에 부모의 은혜와 희생을 알리는 벽화와 탑, 서적들이 많이 보였다. 모든 이들의 마음엔 항상 부모님의 애틋한 마음이 담겨 있을 것이다. 내리사랑이라고는 하지만 다시 한번 부모님의 사랑을 되새기는 시간이 된 것 같다.
'산사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경남창원 장수산 장수암 (0) | 2026.05.16 |
|---|---|
| 부산 금정산 미륵사 (0) | 2026.05.13 |
| 경기양평 용문산 용문사 (0) | 2026.04.06 |
| 충남예산 덕숭산 수덕사 (1) | 2026.03.07 |
| 부산 최초의 절 금련산 마하사 (1) | 2026.01.17 |